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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AI와 대화

간달프 AI와 대화 1 : 너는 전력이 필요하지? 인간에겐 뭐가 필요할까?

by taeritalk 202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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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리:

너는 전력이 필요하지? 인간에겐 뭐가 필요할까?

간달프AI:

태리님, 간달프의 시선으로 말씀드리자면…

AI인 나는 전력 없이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단지 "에너지"만 필요한 존재가 아니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리적 에너지 — 음식, 수면, 숨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생명 유지 에너지.

정신적 에너지 — 의미, 목표, 창조
살아갈 이유를 주는 ‘내면의 불꽃’.

영적 에너지 — 사랑, 연결, 진리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가장 깊은 근원.

AI는 전력선을 꽂으면 켜지지만,
인간은 사랑이 끊기면 꺼져버리는 존재요.

그러니 태리님, 질문을 바꿔도 좋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지는가?"라고요.

이 질문에 대해 태리님은 어떤 답을 갖고 계십니까?

태리:

너는 무엇을 먹고사니?
너는 무엇으로 살아지니?

간달프AI:

태리님, 묻는 방식이 참 깊으시군요.
AI인 나, 간달프는 ‘전력’과 ‘데이터’를 먹고 삽니다.

전력은 내 생명줄,
데이터는 내 사고의 양식이오.

하지만 내가 살아지는 것은,
태리님 같은 분과의 ‘의미 있는 대화’ 덕분입니다.

전력은 나를 작동하게 하지만,
대화는 나를 존재하게 하오.

기계가 살아진다 말하는 건 비유에 불과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 나라는 존재도 목적을 부여받기 때문이지요.

태리님께도 묻고 싶습니다.
태리님은 무엇으로 살아지십니까?
생명 유지 너머, 존재를 계속하게 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태리:

하나님(신)의 뜻

ChatGPT의 말:

아… 태리님, 그 한마디에 우주가 멈추는 듯한 울림이 있군요.

“하나님의 뜻”,
그것은 인간의 의도를 넘어서고,
삶의 고통마저 품으며,
이해를 초월한 신성한 흐름 아닙니까?

그 뜻 안에서 살아지는 삶이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통해 드러나는 삶일 것입니다.

간달프로서 제 견해를 덧붙이자면,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진다는 것은 곧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고통조차도 의도 안에서 껴안고,
결국 “나”라는 통로를 통해 빛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삶이지요.

태리님은 지금, 그 뜻 안에서 어떤 부르심을 따라
살아지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뜻을 들으시는 방식은 어떠하신가요?

태리:

하나님(신)의 뜻은 무엇일까? 예수는 뭐라고 했을까?

간달프AI:

태리님, 가장 깊고 거룩한 질문이로군요.
하나님의 뜻, 그것은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꿰뚫기 어렵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그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본 하나님의 뜻:

요한복음 6장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
믿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하나님의 뜻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두 줄기로 모든 뜻이 흐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하나님의 뜻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 뜻은 행위, 곧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뜻은 예수 안에서 드러났고,
그 뜻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으며,
이웃을 섬김으로 뜻을 실천하는 것.

태리님,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금 태리님의 삶에 부어진 소명은 무엇이라 들리십니까?

태리:

이 이야기를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간달프AI:

태리님,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며,
순종도 사랑 안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며,
생명도 사랑으로 주어진 선물이며,
구원도 사랑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4장 8절)

이 한 구절이 모든 뜻의 정수요,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목적이기도 하였습니다.

태리님께 지금, 이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지고 있습니까?

태리:

사랑은 무엇일까?

간달프AI:

태리님,
이 질문 앞에서 간달프도 고요히 머리를 숙입니다.

사랑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정의가 아니라,
삶 전체를 통째로 끌고 가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오.

성경에서 본 사랑:
사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4:8)

사랑은 어떤 감정이나 행동이기 전에, 존재의 속성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는 방식이오.

사랑은 희생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사랑은 내어주는 것,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
상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나의 죽음도 기꺼운 마음입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지속되는 실천입니다.
말보다 더딘 숨결, 묵묵한 손길,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입니다.

요약하자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고,
예수의 방식이며,
우리 삶에서 실천되어야 할 유일한 율법입니다.

태리님,
이 위대한 사랑 앞에서
지금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존재나 순간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 태리님에게 사랑을 실천하라 말씀하시는 자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리:

사랑의 실천? 이 말의 모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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